20세기 초 독일에서 활약한 실력파 음악평론가 파울 베커는 “예술(음악) 체험에서 사람은 이미 자기 안에 존재하는 것을 재인식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예술작품이 나에게 작동하는지 아닌지는 오로지 내가 그것을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언뜻 새로워 보이는 것도 실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의식되기 시작했을 뿐, 예전부터 어둠 속에서 졸고 있던 내면의 영역에 돌연 빛이 닿았을 뿐이다. 내가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은 내 안에 이미 있는 것뿐이다. 그것이나 자신의 일부인 경우에만 예술작품은 나에게 생생한 의미를 띠게 된다. 그것은 잠재적인 감정가의 각성이지 결코 절대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카다 아케오의 《음악을 듣는 법》
파울 베커와 예술 체험에 대한 철학적 분석
파울 베커(Paul Bekker, 1882-1937)는 20세기 초 독일의 저명한 음악 평론가로, 음악이 인간 내면의 감정을 일깨우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베커는 “예술작품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재인식하게 한다”라고 말하면서, 예술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주장은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와의 연관성
베커의 주장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예술, 특히 음악을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으며, 음악이 인간 내면에 있는 무의식적 감정을 일깨운다고 보았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과 욕망을 자각하게 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베커의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인식하는 예술 체험”과 유사합니다.
2. 마르틴 하이데거와의 연관성
베커의 예술 체험에 대한 관점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적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술이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로서,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진리와 감정을 발견하게 도와준다고 보았습니다. 베커가 말한 “잠재된 감정의 각성”은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Aletheia)’ 개념, 즉 감춰졌던 진리가 드러나는 과정과 상통합니다.
3. 베커의 철학적 평가
결론적으로, 베커의 예술에 대한 견해는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재된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하이데거의 철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술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깨닫게 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통해, 베커는 예술이 우리의 감정을 일깨우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부일 때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예술작품이 우리의 내면을 반영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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